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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레포트] 비디오 게임, 성소수자의 ‘시간’을 비틀다… 기 훈 찬 기자가 말하는 ‘퀴어 타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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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전 조회 0

[문화 레포트] 비디오 게임, 성소수자의 ‘시간’을 비틀다… 기 훈 찬 기자가 말하는 ‘퀴어 타임’의 미학본 이미지는 AI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적령기’를 이야기합니다. 10대에는 연애를 하고, 20대 중반에는 번듯한 직장을 잡고, 30대에는 결혼을 해 35세가 되기 전 내 집을 마련하는 것. 많은 국가와 문화권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이른바 ‘정상적인 삶의 시계(Chrononormativity)’입니다.

하지만 영국의 게임 전문 매체 유로게이머(Eurogamer)의 키 훈 찬(Khee Hoon Chan) 기자는 프라이드 주간 특별 기고를 통해, 이 선형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인 시간선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른다고 말합니다. 바로 성소수자(퀴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성소수자 특유의 시간관인 ‘퀴어 타임(Queer Time)’을 투영하고, 사회가 규정한 시간의 규칙을 매력적으로 비틀어내는지 자신의 시각을 담아 풀어냈습니다. 키 훈 찬 기자가 바라본 게임 속 ‘시간’의 의미를 기사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느리게, 혹은 다르게 흐른다”

싱가포르에서 자란 키 훈 찬 기자는 자신이 겪은 제도적 차별과 억압을 먼저 고백합니다. 퀴어에 대한 교육이 전무하고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청소년기 내내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혼란과 싸우느라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때문에 남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삶의 이정표를 제 나이에 달성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그는 이렇게 퀴어들이 정체성을 뒤늦게 깨닫고 남들과 다른 리듬으로 삶을 살아가는 현상을 ‘퀴어 타임’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최근 정교해진 내러티브 게임들이 이 독특한 시간적 경험을 완벽하게 시각화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게임 속 초능력과 SF 장치, 실은 ‘퀴어의 소외감’을 뜻해

키 훈 찬 기자는 몇 가지 게임을 예로 들며 감각적인 분석을 내놓습니다.

유명 그래픽 노벨 게임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에서 주인공 맥스는 시간을 되돌리는 초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는 이 능력이 단순히 흥미로운 게임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수용하고 진짜 삶을 시작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고 느끼는 퀴어들의 무의식적 열망을 대변한다고 해석합니다. 주인공들이 겪는 끊임없는 재앙은 그들의 시간을 앗아가는 현실의 혐오를 닮았습니다.

또 다른 게임 《이프 파운드...》에 등장하는 ‘블랙홀’ 설정에 대해서도 찬 기자는 날카로운 해석을 덧붙입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가족의 압박 속에서 느끼는 극심한 고통은, 게임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한데 짓눌린 블랙홀의 비명"으로 표현됩니다. 그는 이를 두고 사회가 정해놓은 시간 관념이 퀴어 개인을 얼마나 파괴적으로 짓누르는지 보여주는 최고의 은유라고 평합니다.

특히 우주여행을 다룬 《킬링 타임 엣 라이트스피드》는 찬 기자가 느낀 ‘퀴어 특유의 외로움’을 가장 잘 관통하는 작품입니다. 우주선 안의 주인공에게는 고작 30분이 흐르는 동안, 지구의 친구들은 29년이라는 세월을 지나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SNS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저만치 앞서가는 주류 사회를 바라보며 홀로 남겨지는 슬픔, 찬 기자는 여기서 퀴어들이 집단에서 소외될 때 느끼는 시공간적 단절을 목격합니다.

10초의 종말, 그리고 역사적 뿌리

찬 기자는 플레이 시간이 단 10초에 불과한 실험적 게임 《퀴어즈 인 러브 엣 더 엔드 오브 더 월드》를 언급하며 글을 맺습니다.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의 10초 동안 연인과 마지막 교감을 나누는 이 게임은, 짧은 루프를 반복하며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의 긴 시간선을 비웃습니다.

그는 이러한 ‘종말론적 시간관’과 ‘퀴어 타임’의 부상이 우연이 아니라고 짚습니다. 1980년대 에이즈(AIDS) 대유행 당시, 수많은 젊은 성소수자들이 미래를 빼앗긴 채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비극적인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결론: 게임, 퀴어들이 시간을 지배하는 해방구

결과적으로 키 훈 찬 기자가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분명합니다. 시간 역시 성별이나 인종처럼 사회가 합의해 만든 하나의 ‘구조물’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현실의 차별로 인해 삶의 궤적이 뒤틀린 성소수자들에게, 비디오 게임은 시공간을 마음대로 구부리고 재조합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라고 찬사를 보냅니다. 게임 속에서 시간을 조작하는 행위야말로, 현실의 억압적인 시간선에 저항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재발명해 나가는 가장 ‘퀴어한(독창적이고 해방적인)’ 소통 방식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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